본문 바로가기

영화관을나오면다시시작되는

인 더 하우스 (2012, 프랑수아 오종)

*스포주의

4월에 부모님께서 생일 선물로 크레마를 사주셨다.

고등학교 친구 중 한 명이 인스타그램에 올려서 알게 된 크레마.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북튜버 겨울서점님의 영업으로 갖고 싶은 물건 1번이 되어버렸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생일 때 갖고 싶은 걸 말하라길래 주저 없이 크레마를 외쳤다.

 

사주실 때 크레마+yes24 북클럽 1년 이용권을 세트로 선물해 주셨다.

그래서 크레마가 배송되자마자 yes24에 '영화' 키워드를 검색하고 책을 닥치는 대로 다 다운 받았다.

그 중에 하나가 <영화관을 나오면 다시 시작되는 영화가 있다(김호영)>였다.

지난 학기 동안 카페 알바를 했었는 데, 오전 타임이라 손님이 별로 없어서 틈틈이 크레마로 이 책을 읽었었다.

 

이 책은 여러 프랑스 영화들과 영화를 만든 감독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는 2시간짜리 즐거움과 안식이 아닌, 삶에 따라오는 불편한 자극이며 때때로 날카롭게 뒤흔드는 어떤 것이라며,

캐릭터와 스토리 모두가 통상적인 흥행작들에서 벗어난 영화들을 소개해준다.

책에 나온 영화들 중 하나도 본 게 없었는데, 이미 책을 읽으며 반은 스포당한 뒤였지만 직접 영화를 봐보고 싶다는 생각이 꿈틀거렸다.

그래서 넷플릭스랑 왓챠에서 책에 나온 영화들을 다 검색해보았다.

그 중에 왓챠에서 찾은 게 '인 더 하우스'였다.

 

마침 내가 책에서 읽고 있는 부분이 '인 더 하우스'였고, 내용은 알지만 그것에 대해 분석된 글을 읽기 전이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영화를 틀었다.

 

이 영화는 천재지만 가족에 대한 애정결핍이 있는 클로드와 작가를 꿈꾸었지만 실패하고 문학교사에 머무른 제르망의 이야기이다.

이 둘의 만남은 비밀스럽고 치밀한 음모로 이어진다.

작가의 꿈을 이루지 못한 제르망은 천재 제자 클로드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며 열등감을 채우려 한다.

그런데 이때 클로드는 행복한 라파의 가족에 질투와 부러움을 느끼며 깊숙이 라파 가족의 삶에 들어가려 들고, 라파의 집에 놀러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대로 글쓰기 소재로 삼는다.

점점 노골적으로 라파 가족의 삶을 훔쳐보고 자기 맘대로 해석해 표현해내는 클로드의 글쓰기는 제르망의 흥미를 일으킨다.

결국에 제르망은 클로드가 라파 가족의 삶에 더 깊숙이 들어가 행동을 실험하고 반응을 이끌어내어, 이를 소재로 삼아 글을 쓰게끔 부축이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점점 실존 인물을 단순히 소설 속 인물로 바라보며 파괴적인 행위에 빠져드는 클로드와 제르망은 학교에서 쫓겨나게 된다.

결말이 진짜 소름돋는데 여기까지 대강의 줄거리를 알게 되었다면 꼭 한 번 봐봤으면 좋겠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나는 잠깐 멍을 때렸다.

내가 라파 가족 입장이라면 정말로 불쾌하고 소름끼치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볼 때 즈음 나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서 단편 소설이나 짧은 시나리오를 써보던 중이었다.

인물들을 관찰하고 묘사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클로드의 거침없는 글쓰기에 묘한 흥미를 느꼈다.

누군가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훔쳐보고 관찰하여 글을 쓰고 싶다는 위험한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생각을 추측하고 해석하여 이들을 둘러싼 이야기와 함께 글로 옮겨내는 클로드의 방식에 흥미가 갔다.

글을 쓰던 중이어서 클로드의 글쓰기에 집중해 눈길이 갔던 것이었다.

심지어 작가가 되고자 했었던 제르망은 얼마나 클로드의 글쓰기에 빠져들었을까.

이들의 "결핍", 제르망의 문학에 대한 결핍과 클로드의 가족에 대한 결핍은 서로를 채워줌으로서 훔쳐보기와 글쓰기로 작동한다.

결핍과 흥미는 이들을 끝도 없는 욕심과 위험한 시도로 이끌었다.

결핍이 흥미를 파괴적인 방향으로 비틀어버린 것이다.

 

요즘의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휴학을 해서 할 일이 없으니 주로 하는 일이 안드로이드 공부나 글쓰기이다.

학생으로서 하는 일인 공부를 빼면 글을 쓰는 사람인 셈이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 영화가 주는 불편한 자극이 되려 나에게 신선한 관점으로 다가왔다고 조심스럽게 얘기하고 싶다.

솔직한 말로 이들의 파괴적인 행위에 소름이 끼치면서도 한편으로 부분적으로는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면 1차원, 2차원적으로 받아들이고 대화에 참여했다.

1차원적으로 상대방이 건넨 말에 대해 어떤 기분을 느꼈고, 2차원적으로 상대방의 말의 의도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난 뒤에 나는 대화 중 나눠지는 '말' 자체를 3차원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말의 의도를 생각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어떤 맥락에서 기원한 것인지,

말에 포함된 생각으로 인해 어떤 행동이 만들어지는 지 등 대화에 객관적인 관점까지 더해 참여하게 되었다고 해야할까.

클로드처럼 '나와 너의 대화'에서 나온 여러가지 말들을 이야기로 풀어내보고자 하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일례로 평소였으면 짜증났을, 무심코 상대방이 던진 말에 기분 나쁘기도 전에 저 말을 어떤 맥락의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을 지 생각했다.

제 3자의 입장처럼 대화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 어떻게 이 '영화'가 나에게 '다시 시작'되었는지 몇 줄 적어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영향도 있었던 반면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담는 '소설'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

 

상상은 재밌다.

더욱이 사람 사는 일의 모양새는 정말 다양하고 전개 가능성이 무한해서 상상의 재료가 넘쳐난다.

그러나 실제하는 사람, 그것도 가까운 사람을 마음대로 훔쳐보고 상상하여 왜곡해 글로 옮겨 공유하는 것은 분명한 사생활 침해이자 명예훼손이다.

여태 클로드의 행동이 흥미롭고 내게 색다른 영향을 끼쳤다고 얘기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

실제로 일어나서는 안되는 끔찍한 일이다.

누군가로 인해 대상화되고 저도모르게 조종된다는 것은 인간이자 개인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를 기록으로 남기고 공유하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된다.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지는 아는 바가 없다.)

 

영화를 본 지는 좀 되었는데 이제야 리뷰를 적으면서 한 사건이 떠오른다.

http://www.news-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75390

 

김봉곤 작가 ‘그런 생활’ 사적 대화 무단 인용 논란과 재현의 윤리 - 뉴스페이퍼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최근 김봉곤 작가의 ‘그런 생활’이 성적인 내용을 포함한 사적 대화를 별도의 가공 없이 그대로 무단 인용해 도마 위에 올랐다. 김봉곤 작가는 자전적 소설을 쓰는

www.news-paper.co.kr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고 있는 김초엽 작가님의 스토리를 통해 이 사건을 접했었다.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김봉곤 작가의 <그런 생활>에서 작중 인물인 C누나와의 대화가 실제 인물과의 사적 대화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지인들도 C누나가 실제 인물인 것을 알 정도로 그대로 묘사되어있었고, 그 분이 김봉곤 작가에게 수정을 요구했지만 이 작가는 수정할 기회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시하고 출판했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대형출판사인 문학동네와 창비는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음에도 묵인했고 뒤늦게 사과했다.

한 사람의 한 부분이 타인에 의해 들춰지고 대중에 공개된 것도 모자라 거대한 힘에 의해 짓눌리다니.

실로 잔인하고 끔찍할 수가 없다.

내가 당사자였다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용기도 내기 힘들었을 것 같다.

 

한 시대는 문서화된 법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여론으로 형성된 도덕과 윤리로 만들어진 질서로 굴러간다.

우리는 지금, 인터넷이 보편화되어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세상에서 개인의 사생활이 쉽게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이 시대가 존중과 보호를 각별히 필요하게 된 이유이다.

여러가지 우선순위들이 있겠으나 개인의 삶을 부분적으로라도 파괴하는 것은 어떤 사회적 행위든 용인될 수 없고,

이제는 우리 모두가 그러한 개인의 삶에 대한 존중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우선시 되어야 함을 알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도덕과 윤리가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저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이다.

<인 더 하우스>의 다른 결말을 보게 된 기분이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5901

 

예술에 겁먹기

글 쓰는 것을 좋아해 어릴 때부터 이런저런 글을 써왔지만 전통적 의미로서의 ‘순문학’에 속하는 소설을 쓰는 일은 피해왔다. 한편으로는 내가 그러한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라고 섣불리 판�

www.cine21.com

내가 3번 넘게 시즌 6을 통째로 정주행한, 광적으로 좋아하는 미드 드롭데드디바에도 비슷한 사건들이 나온다.

개발한 AI 비서에 아내의 인적 정보를 무단으로 사용하여 적용한 남편에게 수익의 반을 아내에게 주도록 한 사건,

표절 사건에서 패소한 표절당한 작가가 책의 내용이 자신의 실제 이야기임을 증명하여 사생활 침해로 항소해 이긴 사건 등.

개인의 인적 정보 및 사생활이 얼마나 고유한 의미를 갖는 지 알려주는 사건들이다.

더더욱이 실제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북튜버 김겨울님이 쓰신 위 칼럼 덕분에 '재현의 윤리'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언어는 모호한 것을 정의하고 상황에 대한 분별력을 길러주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그렇다.

<인 더 하우스> 주인공들은, <그런 생활>의 김봉곤 작가는, 겁도 없이 '재현의 윤리'를 어긴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더더욱이, 인간을 그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인물 한 명으로 여겨서는 안될 일이다.

 

여러모로 보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이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의 넝쿨로 긴 글을 쓸 생각은 없었지만 어쩌다보니 쓰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이기심을 갖고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로서 우리는 항상 타인을 대상화하는 생각과 행동을 경계해야한다.

<인 더 하우스>가 이를 디스토피아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