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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을나오면다시시작되는

카우스피라시 (2014, 킵 앤더슨 & 키건 쿤)

비건 한달 챌린지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넘었다.

이 움직임은 여태껏 내가 시도한 움직임 중에서도 가장 역동적이다.

컴퓨터를 공부하든, 안무를 짜든, 모두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하는 단순한 움직임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머리를 쓰긴 했지만, 비건은 보다 촘촘한 움직임이다.

아마 깜깜이였던 분야에 시야를 트니 너무나 많은 정보들이 쏟아져나와 허우적 대다가 

보이는 걸 하나씩 붙잡아 소화하려고 하는 고군분투의 과정을 겪고 있다고 해야 적절할 것이다.

 

왜 비건을 하느냐.

여러가지 일들이 내 삶에 들어왔고, 그것에 대한 반응으로 든 여러 생각들이 뇌리에 스쳐

이미 비건이라는 선택지가 내 눈 앞에 놓여있었다.

'식사'는 나에게 커다란 만족을 주는 하루일과 중 하나이기에 이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으로 일단 한달 챌린지를 시작했다.

시작은 반이라는 말이 있는데 나의 비건 시작은 왠지 반 이상인 것만 같다.

시작과 동시에 나는 여러 글들과 영상물을 접했고 외면하기 힘든 사실들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많이 알게 되었다.

 

어제 새벽에 '비긴 비기너'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한 편 썼다.

비건을 실천하려는 도전에 이르게 된 나의 생각의 발자취를 곱씹어보고 싶어서였다.

나아가 누군가가 왜 비건을 하느냐고 물었을 때 솔직하고 정확하게 내 생각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글을 써보면서 내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비건을 더욱 좋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유튜브 '초식마녀' 채널의 힘이 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ia8ipSNz9LuL-98J1cTvzw

 

초식마녀 Tasty Vegan Life

초식마녀 Tasty Vegan Life | 맛있는 채식생활🌱 작지만 따뜻한 초식마녀의 주방에 어서오세요 :) 유튜브 : www.youtube.com/c/TastyVeganLife 인스타툰 : https://www.instagram.com/tozeetoon/

www.youtube.com

채널 영상들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본받고 싶어진다.

단 며칠 만에 이 분 영상을 거의 다 봤는데, 그 중에 q&A 영상도 있었다.

q&A 영상에서 초식마녀님은 <카우스피라시> 다큐를 이야기하며, 이 다큐를 계기로 비건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난 사실 '좋은 게 좋은 거', '지구와 사회를 위해 뭐라도 해보자'라는 생각들로 비건을 시도한 것이기에

딱 잘라 "이것을 계기로"라고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설명의 욕구가 있고,

이는 나 스스로를 위해서, 그러니까 나의 지속성을 위해서 비건을 하는 명확한 이유가 필요하다.

나를 납득시키고 나의 삶에 들어와있는 사람들을 납득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비건을 이야기하며 가장 두려운 '지속성'을 지켜내기 위해서 말이다.

 

초식마녀님 덕분에 알게 된 이 다큐를 찾아 본 나는, 나의 이런 시도들의 당위성이 잘 설명되어 기뻤다.

계기가 있어 행동하는 것이 아닌, 일단 행동을 하고 당위를 찾는 모양새가 웃기긴 하지만.

 

<카우스피라시>는 COW(소)와 conSPIRACY(음모) 단어를 합쳐 만든, 소에 대한 음모라는 뜻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많은 환경 단체들이 지적하지 않는, 지구 오염의 주범인 축산업에 대해 밝힌다.

정확한 숫자와 통계로 축산업의 민낯을 낱낱이 밝히는 이 다큐멘터리는

처음부터 채식을 권장하지는 않지만 다큐 말미에 권장을 하기 전부터 이미 육류소비 지양의 중요성을 절절이 실감하게 만든다.

 

이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소고기 450g을 만드는 데 9500L, 달걀은 1800L, 치즈는 3400L의 물이 소비된다.

또, 길러지는 가축들이 먹이를 소화시키며 만드는 메탄의 양이 모든 교통수단의 배기가스보다 많다.

게다가, 가축이 뿜어내는 메탄 가스는 자동차의 이산화탄소보다 86배 해롭다.

축산업은 전세계 이산화질소의 65%를 배출하고 이 기체는 이산화탄소보다 지구온난화에 끼치는 영향이 296배 높다.

전 세계 물 소비량의 30%, 땅 표면의 45%가 축산업에 쓰이고 있고,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브라질의 아마존 파괴도 91%가 축산업 때문이다.

러닝타임 1시간 30분짜리 다큐멘터리에서 초반 10분만에 나열된 통계들이다.

이러한 각종 통계들은 UN 연구 보고서를 비롯한 여러 연구 자료에서 제작진이 수집한 정보들이다.

과연 여러 환경단체들은 진정 이러한 현실을 모르는 것일까?

 

다큐멘터리를 보면 이미 환경단체들은 축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사람들의 지지와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단체들이기 때문에

육류 소비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축산업이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고 외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정치계에서도 권력을 쥐며 큰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축산업 종사자들을 등질 수도 없단다.

다큐멘터리 뿐만 아니라 <아무튼, 비건> 책에서도 축산업이 왜 이렇게 거대해졌는 지 밝히는 데,

이들은 사실 커다란 규모의 동물 농업을 운영할 자금적 역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보조금으로 막대한 축산업을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이러한 축산업의 진실을 밝힌 하워드 라이먼은 목장주들에게 고소를 당하고 5년 동안 수십만 달러를 소송에 썼다.

또,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윌 포터는 FBI가 동물권, 환경 운동가들을 국내 테러리즘 위협의 1순위로 명시하고 있음을 이야기하며 정보 자유법으로 대테러 부대 자료를 열람했을 때 자신의 강의와 언론 인터뷰 자료를 감시한 내용이 있었음을 밝혔다. 

미국에서 태어나 브라질에 살며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소 목장에 반대하던 도로시 스탱 수녀는 축산업이 고용한 살인 청부업자에 의해 총살당했다.

다큐에 나오는 한 전문가는 얼마나 많은 환경운동가들이 진실을 얘기하고 죽임을 당했는지 이야기 한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 축산업이 얼마나 심각하게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지,

그리고 축산업의 이익과 조금이라도 연결된 개인 혹은 집단이 얼마나 이를 외면하고 진실을 은폐하는며 왜곡하는지,

지금과 같이 많은 인구가 같은 식생활을 지속한다면 얼마나 빠르게 지구가 황폐화될지 무서우리만큼 낱낱이 알게 된다.

이 모든 정보를 접하고도 이를 무시하고 육류 소비를 이어가는 게 맞는 걸까.

 

다큐멘터리 말미에는 아마 대다수의 채식주의자들이 채식을 선택할 이유가 되었을 동물권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리가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촬영한 감독은 이러한 살생 장면을 더 볼 자신이 없다며 이와 관련된 촬영을 중단한다.

이후 고기를 대체하는 식물성 식품을 개발하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채식하는 삶의 긍정적인 미래 모습으로 다큐가 마무리된다.

 

<아무튼, 비건>을 읽고, 초식마녀님 유튜브를 구독하고, 각종 자료들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 나를 비건으로 정의내리기 어려웠다.

내가 이걸 지속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점 내가 먹어왔던 고기들이, 고기가 되어버리기 이전에 동물이었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나 한 사람의 육식 생활이 얼마나 많은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지 알게 되니

이제는 두려움이고 나발이고 하루라도 더 비건인 식사를 하고, 하나라도 더 비건 상품을 선택하는 게 좋지 않을 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비건 생활의 '지속성'을 두려워 할 게 아니라, 전지구적인 관점에서 육식 생활이야 말로 '지속 불가능한' 식습관임을 알게 되었다.

진정 지속가능한 것은 비건이다. 채식위주의 식사이다. 

내가 이제 비건으로서 이겨내야 할 것은 혹시라도 잃게 될 인간관계들과 여러 불편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의 지혜로운 대처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뿐일 것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다큐를 보면서 비건의 의미를 되새기고 꾸준히 지속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