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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을나오면다시시작되는

관종의 세계 (2019, 크리스탄 오로에트 외 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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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그 작은 네모의 세계

 

1

 

모든 게 거짓이라고 느껴진다.

나는 스마트폰 안의 사람들의 세상, 광장의 진실을 알 수 없다.

보이는 게 진실이라지만

진실이 진정 보이지 않는 것이라면?

보여지는 것은 과연 진실일까?

편집된 세상. 정말로 편집되어버린 세상.

 

2

 

두 개로 갈라진 세계

하나는 화면 앞 하나는 화면 뒤

 

3

 

마치 삶이 유튜브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오랫동안 핸드폰의 작은 화면으로 유튜브를 보고 난 뒤 화면을 끄면,

남은 것은 어두운 화면 뿐이다.

유튜브 속에는 생동감 넘치는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모두가 잠든 새벽의 고요 속에서 나는, 적막한 또 다른 세계에서 힘없이 숨쉬고 있는 기분이다.

그런데 그 작은 화면을 비집고 들어갈 수는 없다.

나는 여기 넓은 세계에 있다.

유튜브가 아닌 지금 내가 숨쉬고 있는 공간에서 내 삶의 생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하루 중 여가 시간 대부분을 유튜브를 보는 데 쓴다.

보는 영상은 다양하다.

비건 레시피를 보기도 하고, 먹방을 보기도 하고, 예능 편집본을 보기도 하고,

짧은 뉴스를 보기도 하고, 춤 영상을 보기도 한다.

여러 영상을 건너 건너 보다보면 몇 시간이고 훅훅 지난다.

 

그러던 중 한 크리에이터의 인터뷰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평소에도 너무 좋아하던 영상들을 만들던 분이고, 재밌게 보고 있어서 인터뷰 영상까지 찾아보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영상을 만드는 일에 있어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열심히 임하는 것이 너무 멋있어 보이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거창한 철학까지 가질 일인가? 라는 오만함이 섞인 의구심도 들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작은 화면만 들여다 보고 있게 붙잡는 것이 의미있는 일일까?

유튜브의 영상들은 분명 나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유튜브에 빠져 시간을 버릴 지, 적당히 절제를 할 지는 내 몫임이 분명히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왜 스치는 생각을 붙잡아 의문을 가지는 걸까.

아마 이 영화를 봤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온라인 예매로 본 프랑스 영화 <관종의 세계(2019)>

지난달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상영한 프랑스 영화 <관종의 세계>.

원어로는 Selfie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관종의 세계'로 제목이 번역되어 들어왔다.

 

BIFAN에서 이번에 왓챠와 함께 온라인 상영관을 마련했다길래 궁금해서 구경하던 중 이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관종의 세계라니.

무슨 인터넷에 떠도는 짤 제목 같았다.

그런데 줄거리를 본 뒤 내가 간간히 유튜브를 보면서 느꼈던 현타의 종류에 대해 알 수 있을 거 같은 기대감이 들었고,

프랑스 영화인데다가, BIFAN 영화는 처음이라 하나 봐볼겸 예매를 했다.

(나는 프랑스 발음을 좋아해서 프랑스 영화를 좋아한다. <꼬마니콜라> 강추)

 

티켓코드 외우기 귀찮아서 캡쳐해뒀었다

영화 속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다들 건너 건너 연결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형태의 등장인물 설정을 정말 좋아한다.)

이들은 각각 다른 이유로 인터넷 세계 부작용의 표본이 된다.

 

아픈 아이를 이용해 영상물을 찍어 올려 관심과 금전적인 지원을 받다가

아이가 병이 낫자 다른 아이를 끌어다 폭식증이라고 소개하며 영상을 찍어 올리려 하는 부부.

인터넷 유행어로 성공한 사람을 욕하던 중 그와 연락이 닿아 어쩌다 썸을 타게 되었지만

막상 오프라인에서 만나고는 안좋은 미래를 예감해 도망치는 문학 선생님.

만남 어플에서 점수를 조작해 좋아하던 사람과 사귀게 되지만

맞지 않는 사람과의 연애에 답답함을 느끼고 혼신을 다해 다시 자기의 점수를 깎는 남자.

맞춤형 광고를 광적으로 맹신하여 모든 추천 광고 물품을 다 사들이는 사람 등.

굉장히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며 생동감 넘치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실 이 영화는 유튜브와 비슷한 플랫폼의 폐해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인터넷 화면에 정신을 빼앗긴 사람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끊임없이 핸드폰, 컴퓨터 화면 혹은 카메라만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실과 화면 너머의 세계를 구분하지 못한 채 빠져든다.

 

영화의 첫 이야기와 마지막 이야기

위 사진에서 왼쪽 장면은 아픈 아이의 부부가 그들의 영상을 잘 보고 있다는 다른 부부를 만나게 되는 장면이다.

만난 부부의 딸이 백혈병을 앓고 있다고 하자,

희귀병을 앓고 있는 자신의 아이 영상에 비해 관심을 덜 받을 거라며 안타까워 한다.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서로 카메라를 들고 찍기 바쁘다. 

이런 영화들의 장면을 봐서 그런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브이로그를 찍는 것에 대해 좋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찍는 사람은 바쁘고, 보는 사람은 대충 보거나 혹은 반대로 작은 화면에 눈과 귀를 빼앗기는 영상들.

정말 디스토피아 영화이다.

 

유튜브는 새로운 직업을 창출했다.

최근들어 생각하는 것인데 유튜브도 영상 앞뒤중간으로 광고가 붙는 것을 보고,

TV와 다를 바 없는 새로운 플랫폼임을 체감했다.

채널을 운영하는 데 문턱이 낮아 커다란 방송사 없이도 개인이 마음껏 채널을 개설하고 운영할 수 있게 된 점에서

미디어계의 커다란 변화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나도 유튜브 덕분에 다양한 비건 레시피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홈트레이닝 할 때도 더 정확한 동작을 따라할 수 있게 되었다.

유튜브는 개인과 개인을 쉽고 빠르고 편리하게 이어줌으로서 저비용으로 수많은 정보 교환의 장을 만들어 냈다.

 

친한 친구 중 한명이 혼자서도 재밌게 살 수 있는 방법,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야말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한 적이 있다.

코로나 시대, 언택트 시대로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유튜브 뿐만 아니라 다양한 SNS까지

온라인 상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집에서도 재밌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을 가진 부분들을 현실에서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현실의 주도권을 빼앗긴다면 문제가 된다.

때때로 흔히 말하는 '현타'가 올 때가 있다.

유튜브와 그 외 SNS 속 세상은, 단조로운 라이브 방송인 내가 살고 있는 내 삶, 내 현실과 달리

굉장히 알록달록 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생동감 넘치게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들의 영상은 편집된 영상이다.

효과음과 음악을 넣고, 예쁜 장식과 테마를 그려 넣은 편집된 화면 속 편집된 영상들이다.

타인의 실제 삶이 아닐 지도 모르고, 타인의 실제 삶이더라도 자르고 이어 붙인 조각들이라는 것이다.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과, 제작자에 대한 예의와 함께 영상을 적당히 즐길 수 있는 시청자에게만 '영상'은 의미를 가진다.

너무 몰입하고, 현실과 비교하기에 이르면 악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살아 숨쉬고 있는 현재의 시간과 공간에서 눈을 마주치고, 같은 향을 맡고, 말을 나누고, 손을 맞잡고, 인사를 하는 등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이루어지는 숨결의 공유가 분명 더 커다랗고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믿는다.

더하여, 인식의 주체로서 작은 화면에 모든 것을 맡기지 않고,

오감각을 통해 내 주변과 넓은 세상을 적극적으로 경험해보는 것이 삶에 더욱 다채로운 생기가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화면 너머의 세계는 현실 세계의 일부인 것이지, 또 다른 세계가 아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사실 나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대충 유튜브 작작 보고 뭐라도 해보라는 외침.

어서 코로나가 끝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