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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을나오면다시시작되는

사자산하 - 길 (1978, 허안화), 소셜 워커 - 아시 (1976, 허안화)

*스포주의

*본 영화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SIWFF)에서 <허안화 회고전:흐르는 도시 홍콩의 보통 사람들>으로 상영된 TV영화입니다.

 

격동

나는 몰입했고, 스크린을 향해 살기(氣)를 겨누었다.

정확히 사자산하-길에 나오는 주인공의 가족들과, 소셜워커-아시를 둘러싼 사람들을 향해.

 

스크린 속 세계와 어두운 영화관은 마치 트루먼쇼 공간과 그를 지켜보는 크리스토프의 상황실과 대응되는 듯 했다.

근대 홍콩 사회의 짙은 어둠의 공간을 조명하는, 어쩌면 실제했던 일들을 담았을 이 영화는

너무나도 생생하게 화면 속 한 장면 한 장면이 머릿 속에 정확히 꽂혀 각인된다.

복잡한ㅡ꽉찬 울화통이라고 표현하면 맞을 듯한ㅡ감정은 휘몰아치고, 또 다른 세계가 내 앞에 열린다.

내게 각인되어진 세계는 결코 잊을 수 없고, 그 세계는 오롯이 내가 인식하는 세계의 일부가 되어 흡수된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장소로부터 멀리 떨어진 홍콩은 내가 인식하는, 살고 있는 공간의 한 부분이 되었다.

 

<사자산하-길>에서 재활원 선생님이 쯔이를 설득하는 장면

 

마약. 매춘.

두 영화가 다루는 주제는 이 두 가지이다.

 

첫번째 영화에서는 마약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하게 된 펑마가 나온다. 

그녀는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속아 마약을 하게 되고, 마약을 끊기 위해 스스로 재활원에 들어간다.

가족이라고는 딸 밖에 남지 않은 그녀는 면회를 위해 재활원 선생님께 부탁하여 딸을 찾아가도록 하는데,

부탁받은 선생님은 딸인 쯔이 또한 마약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선생님은 쯔이에게 그의 아들에게도 미칠 영향과 펑마가 퇴원 후 마약을 다시 접할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 하며 쯔이를 설득하고, 펑마도 그녀를 설득해 쯔이가 재활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이끈다.

 

이 영화에는 두 개의 스토리가 교차되어 이어진다.

다른 이야기에서는 도박을 하는 부모에 의해 강제로 몸 파는 일에 내몰린 주인공이 나온다.

부모들은 도박에 정신이 팔려 돈을 탕진하고, 아들 하나 교육비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주인공을 성매매로 몰아세운다.

급기야는 자신들의 도박장에 단골인 나이든 부자와 강제로 결혼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마약을 접하고, 마약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밀매를 하게 된다.

하지만 동생이 마약 운반을 하다 학교에 걸려 처벌 받게 될 위기에 처하자 경각심을 갖고 마약을 끊기 위해 재활원을 찾는다.

이때 펑마와 두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마약 재활원에서 접수처라는 장소에서 마주쳐 지나치는 데,

영화에서는 이렇게 다른 사람으로 표현되었지만 아마 두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펑마의 과거 모습인 듯 하다.

 

성매매 역사에서 항상 여자는 성이 팔리는 위치에 놓여있었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돈으로 사고 파는 노예와 다름없는 위치였더 것이다.

심지어 가족들에 의해, 가족들을 위해 타의적으로, 자의적으로 희생되었다.

물건이나 다름없이 취급받았던 여성들의 '성'은 지금도 미디어에서 대상화되고 소비된다.

형태는 다르지만 지금까지도 의식하지 못할 만큼 넓은 범위에서 여성의 성이 돈으로 사고 팔리고 있다.

 

 

두 번째 영화, <소셜워커-아시>에서는 함께 살 가족이 없어 이민을 하게 되는 소녀, 아시의 여정이 나온다.

가진 것이라고는 5달러 밖에 없었던 아시는 도움을 주는 듯했지만 성매매를 제안하는 어떤 부부에 의해 처음 매춘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홍콩으로 가는 경비를 성매매로 마련한 그녀는 홍콩에서 이모네 집을 찾아가지만 열악한 이모의 집에 의지할 수 없다고 생각해 밖으로 나오게 되고, 홍콩행을 도왔던 남자에 의해 또 다시 성매매 시장에 내몰리게 된다.

한 건물 안에 갇혀 이용당하던 아시는 성매매를 하지만 자신을 좀 더 아껴주는 듯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남자의 집으로 도망친다.

그러나 그 남자 또한 마약을 끊지 못해 점점 가난해지고, 또 다시 빚으로 인해 성매매를 하게 된 아시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다시 도망쳐 실종되고 만다. 

마지막에 그녀를 도우려 했던 센터에서 남자와 여자의 대화, 홍콩에 그렇게 도망쳐 실종되는 여자들이 수십만명이라는 이야기는 씁쓸함과 분노를 남긴다.

 

함께 살아숨쉬는 듯 하지만 철저히 고립되어 이용당하고, 사고 팔리는 여성들의 삶은 마약과 매춘을 경험하지 않는 모든 여성들에게도 분노를 일으킨다.

이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취급되었기 때문에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언제든지 또 다른 형태로의 여성을 향한 차별이 자행될 수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마약과 매춘으로 인해 여성들의 삶을 파괴되는 모습은 아직까지 존재하는 차별이 여성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존중은 결여되고, 혐오만이 안착되어 있다.

심각한 것은 여성들의 삶이 예전보다는 나아졌기에 만족하라는 태도이다.

여성들이 불평등으로 인한 불편함, 억눌리는 감정을 느낀다면 절대 끝난 것이 아니다.

여성들에 대한 성차별이 긴 역사를 이어온 만큼, 이러한 영화들이 기록되고 상영되어 공분을 일으키는 만큼,

여성을 둘러싼 사회문제들의 조명과 파헤침은 계속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이들의 삶과 새로운 주제들은 내 삶의 또 다른 키워드로 남았다.

보이지 않는 것, 들리지 않는 것, 하지만 반드시 보고 들어야 하는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끊임없이 꺼내고 들추어 정확히 마주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