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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을나오면다시시작되는

두 편의 다큐를 보고 생각한 것.

 

넷플릭스에서 <체념증후군>과 <대지에 입맞춤을>을 봤다.

정말 오랜만에 다큐멘터리를 본 것 같다.

여행이나 음식 관련 다큐는 뭐 먹을 때 틀어놓고 자주 봤었는데,

그 외의 주제에 대해서는 본 지 꽤 오래 되었다.

 

체념증후군은 이전부터 계속 봐야지 싶어서 저장까지 해뒀었다.

이제야 본 이유는, 요즘은 그냥 짧거나 자극적인 영상만 추구했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수강신청 때문에 또 교과목 고민을 하다가 어찌어찌 다큐 pd의 인터뷰 기사를 찾기에 이르렀다.

동명이인일 수도 있으나 유명한 분쟁 다큐 pd가 우리 학교 교수님인 듯 하다.

근데 소속만 있고 강사로 활동하시는 건지, 프로필을 찾을 수가 없음. 

 

얽히고 설켜 뭐가 먼저인지 모르겠으나,

갑자기 ebs 다큐영화제 소개집을 뒤져 읽지를 않나,

어제 가족들하고 밥 먹는 데, 기자보다는 pd가 재밌을 거 같다고 하지를 않나,

돌연 pd에 다시 관심이 모아져,

갑자기 오늘 밤 새서 다큐를 연속적으로 보면 진로를 틀자는 다짐을 속으로 되뇌었다.


<체념증후군>은 스웨덴에 머무는 난민 아이들이 몇 개월~몇 년에 걸쳐 깨어나지 않고 잠만 자는 현상을 담았다.

이미 여러 난민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증후군이지만, 감독은 스웨덴에서 유독 체념증후군을 앓는 아이들이 많다는 데에 주목한다.

증후군을 겪는 아이를 가진 가족의 삶을 취재하는데, 40분 가량의 짧은 다큐에는 3명의 아이와 그 가족들이 나온다.

곤히 잠든 듯한 아이들은 모두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4개월 동안 체념증후군을 겪고 있다.

가족들은 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입히며 아이들이 체념해버린 불안한 상황들을 안정된 상황으로 만들려 고군분투한다.

그러면서 하염없이 이들이 깨어나기를 기다린다.

 

후반부에는 스웨덴 내에서 반난민 정서가 확산되고 있으며, 난민 인정 절차가 더 강화되었음을 언급한다.

이전부터 스웨덴 난민 인정 절차로 인해 체념증후군 아이들이 많아진 것임을 지적하는데,

앞으로는 더 많아질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2019년 만들어진 이 다큐에선 '지난 3년 간 200명의 아이들이 체념증후군으로 보고되었음'을 얘기하고 있다.

 

이 다큐를 보면서 다른 무엇보다도, 왜 스웨덴의 난민 인정 절차에 대해 자세하게 파고들지 않은 것인지,

난민 인정 절차의 일면이라도 보여주지 않은 이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오롯이 체념증후군을 겪는 아이들의 모습과 그 가족의 모습, 아이와 가족이 겪은 상황을 내래이션으로 흘려 들려줄 뿐이다.

어쩌면 의학과 사회의 경계를 증명해보이기엔 어렵다고 판단했을지 모른다.

어린 나이에 겪는 충격적인 기억이 트라우마를 남기고, 그 트라우마가 이들로 하여금 긴 잠에 빠지게 한다는 것.

그 사이사이에 인과관계를 영상을 통해 증명해보이기엔 성급한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단 판단이었을 지도.

하지만 체념증후군을 겪는 아이들의 규모가 숫자로만 보여지고,

궁극적으로 이 다큐를 본 사람들이 <일기시대>의 문보영 작가님의 기록처럼 잠깐의 안타까움만 자아내게 한다는 것.

200이란 숫자가 보여주는 심각성과 스웨덴 난민 인정 절차, 이들이 겪은 일에 대한 배경을 약간이라도 들려주고 보여줬다면,

특별한 지위를 가진 자가 시청했을 때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을 까 싶은 아쉬움이 들었다.

어쩌면 극적인 연출 없이 가족들, 특히 아이들의 형제가 덤덤히 기다리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 전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이런 점에서 <대지에 입맞춤을> 다큐멘터리는 분량도 1시간 반 정도 되고, 과학적인 정보들로 가득 차있다.

인터뷰 대상도 굉장히 많고, 몇 초짜리 클립을 찍기 위해 오만데를 다 돌아다녔을 생각을 하니 내가 다 지친다.

동시에 애니메이션으로 탄소의 배출, 재배출 과정을 생생히 보여줘서 정보전달 측면에서 알찬 다큐다.

모든 논의와 결정, 실행의 과정은 정치계까지 올라가 최종 승인되는데,

정치인이 곧 다수의 이해타산을 한데 모으고 이들을 대변해 변화를 선택하고 승인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래서 정치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이 다큐를 결정자의 지위에 놓인 사람들이 봤다면, 설득되기 충분해보였다.

화면분할로 보여주는 방목지와 경운지의 극명한 차이,

명망있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효과적으로 농업 방식을 바꿔야함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큐는 영화와 달리 있는 그대로를 담지만, 동시에 목적과 방법에 따라 사실을 다르게 담아낼 수도 있는 사실을,

제대로 깨달았다.

그리고 그 기록의 방식에 대한 의의는 감독이 쥐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