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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을나오면다시시작되는

소울 (2021, 피트 닥터)

 

혼자, 엄마랑, 친구들이랑, 총 세 번 이 영화를 보았다.

그 만큼 내 인생에서 중요한 영화로 남을 영화이다. 

 

난 아주, 굉장히, 목적지향적인 사람이다.

예전에 친구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넌 목표가 있으면 열심히 하는 성격인 것 같다'라고 말했었다.

당시에 나는 내 삶의 목표 따윈 잊고, 동시에 잃고, 현재 상태에만 빠져있었다.

동아리 일이라던지,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라던지.

그 때는 그냥 '맞지, 목표가 있으면 난 열심히 해. 지금은 목표가 없어서 그런거야'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목표를 향한 굵직한 나만의 스케줄이 없으니, 동아리 일에 일일이 연연해 하고, 연애에 너무 집착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넌 목표가 있으면'이라는 말에 왜 불편해하지 않았는 지 모르겠다. 

목표가 없어도 삶의 순간들을 즐기며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데.

 

나와 '목표'라는 단어는 뗄레야 뗄 수 없을 정도로, 저런 대화가 아주 익숙할 정도로,

나는 항시 목표를 세우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꿈에 대해서 전교생 앞에서 몇 번의 강연을 했을 정도였고,

몇몇 친구들은 항상 목표가 명확하고, 그를 향해 달리는 나를 부러워 했었다. 그리고 난 그걸 좋아했다.

주변 사람들이 멋지다고 말해줬고, 나 스스로도 그걸 뿌듯하게 여겼다.

하지만 꾸준히 목표가 있어온 만큼, 뚜렷한 목표가 없을 때 불안해하지 않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

 

나는 꿈을 정하는 데 집착했다.

꿈이 무엇인가, 왜 그 꿈을 꾸는 가를 떠나서, 어느 순간부터는 꿈이 없는 상태가 못견디게 괴로웠다.

누군가가 넌 뭐가 되고 싶어?라고 질문했을 때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거나 딱히 없다고 하는 게 부끄러웠다.

왜냐하면 지금껏 꿈이 없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었고,

꿈도 명확히 없는 데 열심히 하는 친구들을 보면, 그 개개인의 동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른 채로,

대한민국 교육 현실을 보여주는 그런 기계적인 공부를 하는 건 아닐까라고 감히 걱정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꿈이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대답하는 것 자체가 나는 열심히 살고 있지 않다는 걸 반증하는 것만 같았다.

 

휴학하는 동안 나름 이 블로그에 차곡차곡 내 생각을 적어왔는데,

끊임없이 바뀌면서도 계속 꿈이 생겼다, 꿈이 있다, 뭐 이렇게 외치는 걸 봐선,

1년이라는 시간이 꿈을 찾는 데 쏟은 시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다음 부사장이었나, 그 분 영상을 보고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시간을 아까워 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나는 정말 그 말을 내 방식대로 이해한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데'만' 시간을 쏟았기 때문이다.

 

꿈이 있어야, 그것과 관련된 일을 하고, 그것이 내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고, 이런 연결고리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꿈이 여러 개일 땐 몸이 여러 개였으면 할 정도로 일을 벌렸고,

꿈이 하나일 땐 꿈과 관련되지 않은 일을 할 때 마음 한 구석으로 시간낭비가 아닐까 걱정스러워하며,

어떻게든 내 꿈과 그 일을 연결시키려고 애를 썼다.

이렇게 말하니, 그간 왜이렇게 멍청이같고 바보같이 살았는 지 모르겠다.

 

한동안 변호사가 꿈이었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점점 그 열망이 커지자, 난 말그대로 '넉다운'상태였다.

당장 변호사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데, 준비는 안된 상태지, 로스쿨 게시판 보니 다들 학점이 어마무시하지,

시사에 관심을 잃은 지 오래라 흥미를 찾긴 먼 거 같고, 전자과 학점 따면서 법률관련 대외활동할 자신은 없고,

리트를 풀어보자니 국어에 자신있던 사람도 아닌 터라 집리트 점수가 하염없이 낮을까봐 불안감에 손도 대지 못했었다.

그 상태로 매년 한 두번씩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친한 쌤이랑 인턴 이후 또 만났었는데,

이 때 쌤한테 이 고민을 털어놓았었다.

 

근데 ㅋㅋ 쌤이 이 얘기를 듣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노는 거 좋아하는 애가 무슨 고시 공부야. 기자나 PD이런 거 해.

그리고 세상을 쫙 둘러보면서 사람들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세상을 경험하고 이래야 변호사같은 것도 잘하는 거야.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지도 모르는 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해.'

정확히는 아니지만 이런식으로 말씀해주셨다.

저번에 한국장애인재단 서포터즈 우수활동자로 선정되어 활동 수기를 썼었는데, 그게 에이블뉴스에 올라갔었다.

그걸 쌤한테도 보내드렸었는데, 그 글 때문인지 쌤이 기자하면 정말 잘할 것 같다고 거듭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세상을 느끼고, 몸으로 직접 배우고 하는 것들을 계속 강조하셨다.

그날 읽고 있는 책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는데, 쌤하고 이야기를 나눈 후 추천해주신 책을 사러 서점에 갔었다.

서점 간 김에 요즘 유명하다는 영화도 보고 오자싶어서 바로 예매했던 게 <소울>이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눈물 콧물 다 쏟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혼자 갔을 때 너무 펑펑 울어서 괜히 부끄러워져 화장실로 직행했었다.

얼마 안되긴 했지만 아직도 그 직후 감정과 기억이 생생하다.

사실 22가 지구에 와서 존의 몸 속으로 들어와 일상을 경험하고, 지구에서의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장면까지는

그렇게까지 막 감동이 와르르 쏟아진다거나 하지 않았었는데,

존 가드너가 피아노 공연이 끝나고 허무해한 순간부터 22를 찾는 여정까지 계속 펑펑 운 것 같다.

왜 울었는 지 그 때의 생각을 말하라고 하면 명확히 표현하기는 힘들겠지만

나를 지금껏 들쑤셔놨던 목표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힘들었던 응어리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엉겁결의 필연이라는 게 있는 걸까.

쌤하고 대화를 나눈 날, 이 영화를 보고,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부터 내 삶의 결이 달라졌다.

습관적으로 해야할 일들을 정렬하고, 어떤 선택들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기어이 핸드폰 메모장이고, 수첩이고, 온갖 곳들에 내 선택의 당위성을 입증하는 메모들로 가득 채우고 나서야 직성이 풀렸던 내가,

어딜가나 노트북을 들고 가서 카페에 들어가 뭐라도 해야 하루를 뿌듯하게 여겼던 내가, 

서포터즈 수료증 받으러 서대문구 쪽 간 김에 언니랑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여행 얘기를 하고,

스터디 카페에 갔다가 방을 독서실처럼 꾸미고 싶어서 당장 침대를 분해해 방구조를 바꾸고,

좋아하는 유튜버 분이 인별에 올린 전시회를 보고 친구에게 전화해 다음 날 바로 전시회를 갔다가,

아싸리 창경궁도 가자 싶어 해지는 내내 창경궁을 산책하며 친구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용기 여행을 떠나자며 혼자 제주도 여행 예약을 하고,

친구 자취방에 놀러가기 위해 책 한권 달랑 들고 천안으로 놀러가서 카페에서 혼자 크로플 먹으며 책을 읽고,

등등 정말 수 많은 선택들을 오롯이 내가 지금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했다.

이제 내 삶은 미래에 있지 않다. 지금 여기 현재에 있다.

 

나는 내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은 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더욱 무언가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려고 노력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지금 끌리는 것이, '왜' 좋아하고, '왜' 끌리는 지 스스로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한 노력에 지쳐 납득이 쉬운 선택만을 해버린다.

누가봐도 다른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돕는 직업이 좋은 것이고,

사회 속에서 그 직업의 기능이 확실히 보이는 것이 좋은 것이고,

목표를 세우면 당장 해야될 일이 눈에 보이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여기고,

그거에 맞는 직업적 선택,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해버리는 것이다.

정작 내 몸, 내 마음이 외치는 소리는 귀기울이지 못한 채.

 

나는 고민하는 걸 좋아한다. 끊임없이 물고 늘어져 고민하다가 꽤나 명쾌한 해답이 나오거나 고민을 풀 실마리가 나왔을 때 이를 기록하고, 행동하는 걸 스스로 뿌듯해하고 즐긴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동안 그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나', '나의 목표'를 위한, 뭐랄까,, 목표를 위한 목표, 꿈을 위한 꿈에 대한 고민만 끊임없이 해왔던 것 같다.

자꾸만 시선이 안으로 쏠리니 바깥을 보지 못했다.

이러한 고민은 즐겁지도 않고, 역설적으로 오히려 또 다른 고민만을 낳는다. 

 

영화 <소울> 속에서 문윈드가 어떤 헤드헌터를 정신차리게 했듯,

영화 <소울>이 이런 나를 정신차리게 했다.

덕분에 인생을 진정으로 맛볼 준비가 됐다.

내 감정에 충분히 솔직하고, 지금하고 싶은 걸 하고 살며,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고, 현재를 즐기기로 했다.

어디에서든 나올 법한, 누구든 해줄 수 있는 말이긴 하지만,

<소울>을 보며 스스로 공명했으니, 이 울림은 오래오래 길이 남아 내 삶에 스며들어 나를 움직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