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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 WOOD LIGHTS

다큐멘터리 이야기 구조 3가지 (from 김옥영의 <다큐의 기술>)

이어서 공부한 내용을 옮겨보려고 한다.

(<다큐의 기술> : http://dockingmagazine.com/contents/9/48/?bk=menu&cc=&ci=&stype=&stext=&npg=2)

공부를 해나가면서 느낀 것은 다큐멘터리이야 말로 역동적이고 실험적이며 예술적 묘미가 있는 영상이라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을 손질과 칼질을 거쳐 플레이팅까지 되어 나오는 하나의 요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요리를 할 것인지 정해서 재료를 고르고,

나의 손을 거쳐 요리저리 요리되고,

나의 취향이 담긴 방식으로 플레이팅 되는 듯이,

 

어떤 다큐를 만들것인지 정해서 촬영물을 만들고,

영상 언어로 다양하게 가공하여,

편집을 거쳐 나의 창작 의도대로 제작되는 다큐멘터리.

 

정말 매력적이다.

 

<다큐의 기술>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영상으로 만든 완결된 이야기는 소재, 구조, 표현이라는 세가지 요소가 어우러져 그 각각의 독창적인 미학을 이룩한다. 소재가 '구슬'이라면, 구슬을 꿰는 방식이 '구조'를 만들어내며, 그 하나하나 구슬에 각각 다른 형태와 무늬를 세공하는 것이 '표현'의 영역이 될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 하는 다큐멘터리의 기본 구조는 2가지가 있다. 진행형 구조와 논증형 구조에 대해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시간의 흐름대로, "진행형 구조"

여기서 시간의 흐름은 진짜로 촬영한 순서대로 배열하는 것이 아닌 관객이 영화 속에서 시간이 흐르고 있다고 느끼게 편집하는 것이다. 이는 변화를 통해서 느낄 수 있다.

 

진행형 구조는 2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어떤 사건을 쫒는 것이다.

'처음부터 어떤 사건의 추이를 따라가'거나 '대상의 일상을 쫒다 만난 사건을 다루'는 방식이다.

 

둘째는 사건이 아닌 한 기간 동안의 일상을 담는 방식도 있다.

커다란 사건은 없지만 대상 캐릭터와 주변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방식으로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쌓여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전달된다.

 

진행형 구조에서는 카메라가 대상과 함께 살아간다.

실시간으로 대상의 '현재'를 찍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현장성'을 느끼게 한다.

촬영된 내용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열하면 주인공-사건-배경 구조를 갖추며 '이야기'로 전달된다.

 

진행형 구조로 다큐가 만들어져야 한다면 이 구조의 장점을 살릴 수 있게 대비해야 한다.

1) 대상에 대한 집요한 관찰자적 시선 필요

어떤 상황에서든지 예기치 않은 순간에도 현장성 있게 장면들을 카메라에 담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2) 촬영하면서 감독의 시선이 대상에게서 어떻게 드러날 수 있을 지 고민해야 한다.

 

사소한 장면에서 의미를 포착해낼 수 있어야 영화의 주제가 살아난다.

그러기 위해선 '상상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남들은 그냥 지나쳐버리는 '사소한 순간'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해낼 수 있어야 독창적인 영상이 만들어진다.

그러기 위해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대상의 행위, 상태에 대해, 대상의 감정에 대해 끊임없이 유추해야 한다.

카메라가 아무리 밀착취재를 한다고 해도 그 대상 자체가 될 수 없기에 여러 버전의 상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증거에 따라 논리를 구축, "논증형 구조"

논증형 구조는 시퀀스와 시퀀스를 논리적 인과관계로 이어 결론에 이르게 되는 구조를 말한다.

어떤 문제의식으로 부터 출발하여 그 해답을 찾는 과정을 구조화 하는 형태이다.

전체 이야기의 축이 '논리'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토론을 할때 주장에 따른 근거를 이야기 할 때 여러가지 증거들을 대듯이

논증형 구조의 다큐는 철저한 '증거주의', 즉 팩트를 중시하는 태도를 갖는다.

 

논증형 구조를 따르는 다큐멘터리 중 일부는 감독이 적극적 수행자로서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을 담는다.

증거를 수집하고 사건 속에서 진실을 꺼내 증명해낸다.

증거로 채택되는 에피소드들을 층층히 쌓아올리고 마침내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과정을 통해

다큐멘터리의 주제가 명백히 인지될 수 있다.

 

또 일부는 감독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발언하는 방식이 아닌 심층 인터뷰를 통해

사건을 둘러싼 주변 이야기들을 수집하여 배열한다.

이 과정에서 사건에 대한 증언이 모순들과 법의 이면을 알아차리게 하거나

사건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명확히 인지되도록 보여준다.

 

논증형 구조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이 구조에서는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보다 직접적이고 명시적으로 전달된다.

'설득'을 강력한 목표로 삼고 있어서 현실과 사실 관계를 파헤치는 다큐멘터리에 주로 드러난다.

 

3. 익숙한 것을 거부하는, "자의형 구조"

진행형이나 논리형 구조를 따르지 않는 자의형 구조는 그 구조가 구축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추론해보게 된다.

이는 감독의 생각의 회로를 유추해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큐의 기술>에서 예로 든 영화 중 <의자가 되는 법>(2014, 손경화)이라는 다큐 영화가 있다.

영화의 소개글은 이렇다.

"의자가 만들어진다. 버려진다. 던져진다. 부서진다. 다시 만들어진다. 의자는 내내 가만히 있다."

필자는 이러한 영화의 소개글과 영화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감독으로서도 영화의 진행과정을 명징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시적'으로 던져놓는 것이 역설적으로 작품을 더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다고 믿기 떄문일 수도 있다"

나는 '시적'으로 던져놓는 다는 표현에 엄청난 매력을 느꼈다.

예전에 어떤 시인이 시는 슬플 때 쓴다는 말을 했었다.

그 말에 깊이 공감했던 것이, 고등학교 시절 정말로 힘이 들때마다 시를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문학인 시에 빗댄 시적인 영화라는 표현이 굉장히 아름답게 다가올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의자가 되는 법>에서는 의자가 만들어지고, 배달되고, 버려지는 등의 모습이 담긴다.

의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다큐의 흐름 사이사이 버려지거나 던져지는 의자들의 이미지가 배치된다.

버려진 의자를 사진에 담는 사진작가의 인터뷰를 통해 감독의 이러한 배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버려진 의자가 사람처럼 느껴진다"

인터뷰 이후 의자를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삶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말하는 장면이 보여지고

의자 등받이 강도 테스트를 하기 위해 앉아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환치)

이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의자에 앉은 사람과 의자 자체를 동일시 보도록 의도한다.

 

교차와 번복, 반전 등을 통해 의자를 따라가면서 앞뒤로 의자의 이미지가 융합된다.

그러면서 의자의 존재 의미를 재인식하게 되고,

'의자'에서 '의자와 등가적 존재로 인식되길 바라는 대상'으로 의미가 확장된다.

의자라는 은유를 통해 우리 삶의 존재론을 말하고자 하는 듯하다.

 

이 영화같은 양식은 어떤 틀에 갇혀있지도 않고 목표를 명확히 정의내릴 수도 없다.

감독의 의도를 추측하게 되는 자의형 영화들은 감독의 생각이 이행되고 확장되는 순서로 이어진다.

따라서 진행형 구조, 논증형 구조와는 달리 서사의 이성적인 접근이 아닌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동화작용에 의해 감독의 의도가 관객에게 다가가게 된다.

 

이러한 자의형 구조의 영화들도 감독의 의식의 흐름대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 안에서의 감독만의 기준이 있어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실재를 담은 촬영물들의 배치 속에서 감독은 여러 구조적인 전략을 사용하게 된다.

 

- 현실 정보 사이에 틈입하는 은유적 이미지

[여성의 노동에 주목하는 다큐멘터리 <위로공단>에서는 중간 중간 흰 천으로 온통 얼굴을 가린 두 여성, 눈을 가린 소녀의 모습 같은 이미지들이 삽입된다. 여성 노동자들의 인터뷰로 살아있는 현실을 말하면서 이러한 이미지들로 감독의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큐의 기술>엣는 이를 '사실'에 대한 감독의 '미학적 조망'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은유적 이미지의 삽입은 사회성 소재을 낯설고 경이로운 미학으로 바꾸기도 한다.]

 

- 이미지의 배열을 통한 구조화

[현실에 대한 정보 진술이 아닌 이미지에 집중하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이는 구체적인 설명이 아닌 정서에 집중하여, 이미지 연쇄 혹은 충돌을 통해 전개의 리듬을 만들고, 관객으로 하여금 '느낌'으로서 어떤 의미에 도달하게 만든다.

<여자와 빙하>(2016, 오드리우스 스토니스)라는 다큐에서는 여성 빙상학자의 모습과 그녀가 관찰하는 빙하의 모습을 함께 그린다.

그녀가 자연의 한 부분인 것처럼, 하지만 또 자연 속 빙하 그 자체인 것처럼 묘사된다.]

 

- 일상적인 현실 묘사의 다른 구축

[앞선 다큐들에 사용된 미학적 의미의 이미지들과 달리 현실 그대로의 이미지를 쌓아가며 일상을 묘사하는 것이 있다.

<개의 역사>(2017, 김보람)에서는 '감독의 잦은 이사'와 '죽은 동네 개 백구'를 등치시키며 사라지는 것들, 지워진 시간을 호명한다. 이 다큐에서는 백구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해 주변 사람들의 답변으로 완벽한 타자에서 작은 애정으로 내면의 시선을 이동시킨다.]

 

자의형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따라가며 카메라에 담아내는 것 보다는 감독의 생각이나 정서를 슬며시 드러내며 은연중에 현실이 영상에 담기도록 연출한다. 이 과정에서 생각이나 정서를 담아낼 틀을 감독이 직접 만들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