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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 WOOD LIGHTS

다큐멘터리의 이야기 구축 방법 (from 김옥영의 <다큐의 기술>)

지난 달에 휴학한 이래 처음으로 완독한 책이 있는데, 조해진 작가님의 <단순한 진심>이다.

내가 꼭 챙겨보는 민음사 유튜브 채널에서 편지자님이 추천해주신 책인데,

혜화에 있는 알라딘에 들린 김에 사서 읽게 되었다.

사실 여러 책들을 둘러보았었는데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다큐를 찍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진심>은 프랑스에 입양된 한국인 극작가에게 편지를 보내

그의 이야기를 다큐로 만들고 싶다는 감독의 제안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다큐를 찍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다뤄지진 않지만 다큐가 어떤 방식으로 이끌어지는 지는 대강 알 수 있었다.

 

중심 목표를 갖고 대상과 주변을 탐색하며 기록한 내용들로 만들어지는 다큐멘터리.

다큐도 하나의 이야기이기에 흩어진 기록물들을 짜임새있게 배치하여 서사를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모든 것에 완벽한 비책같은 것은 없다지만 나는 제대로 된 다큐멘터리 제작의 방법론을 알고 싶었다.

그러던 중 한 다큐멘터리스트가 운영하는 다큐매거진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거기서 '김옥영의 <다큐의 기술>' 코너에 있는 시리즈물 글들을 읽었는데, 

이 내용을 바탕으로 공부한 내용을 블로그에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 글의 목차]

  •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 다큐멘터리란 어떤 것일까?
  • 다큐멘터리 속 이야기를 어떻게 구축해야할까?
  • 목표를 향한 '기억의 순서'대로 배열하려면 그 기준을 어떻게 삼아야 할까?

 

해당 사이트 주소 : http://dockingmagazine.com/menu/contentsList/3

 


*메모

- 컷 (쇼트 shot) : Action -- Cut!

- 씬 (Scene) : 동일 장소, 동일 시간 내의 일련의 액션/대사

- 시퀀스 (Sequence) : 하나의 에피소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 다큐멘터리란 어떤 것일까?

 

다큐멘터리는 "질문하는 자""영상 언어"로 만들어낸 "이야기"이다.

'본 것'을 제대로 '보여주려'는 과정을 담은 하나의 메세지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질문"이다.

단순히 본 것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 현상을 분해하고 이면을 뒤집으면서

날 것의 현실에서 어떤 것을 뽑아 전달할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속 이야기를 어떻게 구축해야 할까?

 

그렇다면 어떻게 이야기를 구축하여 전달할 것인가.

 

다큐멘터리는 문자로 전달하는 편지가 아닌 영상 언어로 전달하는 편지이다.

다큐멘터리는 영화와 달리 나래이션이 많다.

내가 자주 보는 세계테마기행만 보더라도 진행자의 나래이션이 자주 깔린다.

어떤 다큐멘터리는 인터뷰 및 나래이션만으로 구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도 있다.

하지만 다큐는 글과 달리 영상으로서 영화와 같은 특성도 지녔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의 말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담은 영상으로도 의미가 전달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영상언어는 시간적 순서로 배열되는 데, 이때 감독이 부여한 질서가 곧 작품의 구조가 된다.

글과 달리 영상은 한 장면 이후에 다른 장면이 나온다.

책을 읽을 때 처럼 앞뒤를 넘겨가며 보는 것이 아니다.

앞의 장면의 잔상이 뒤의 장면에 영향을 주면서 그 연결고리를 통해 해석된다.

<다큐의 기술> 글에 따르면 "영상의 이야기 구조를 만든다는 것은 기억의 경로를 만드는 작업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장면 간의 '관계'이다.

'그리고' '그런데' 등 장면 간의 관계에 적합한 영상들을 제대로 배열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가장 설득적으로 구조화할 수 있을 지 전략을 짜야한다.

미국의 영화 제작자이며 작가인 세일러 커런 버나드는 <다큐멘터리 스토리텔링>에서

'서사 열차'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는 컷과 씬, 시퀀스 각각의 단위에 기승전결의 흐름을 갖게 하여 전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하나의 열차 안에서 한 좌석 단위의 이야기, 그러한 좌석들이 모여 한 칸 단위의 이야기,

그 칸들이 모여 한 열차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열차는 시간이라는 레일을 따라 달려가게 된다.

 

<다큐의 기술>에서는 여기서 이야기의 구조를 만드는 몇 단계의 조건을 규정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1.  컷과 씬, 시퀀스가 긴밀히 연결되어 한 방향으로 달려가기 위해선 '목표'가 필수적이다.

무엇을 이야기 하기 위한 열차인가를 분명히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게 분명해야 거기에 도달하게 될 가장 효율적인 경로로 시퀀스를 구성하고 연결할 수 있다.

 

2.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실체적인 영상 소스를 동원한다.

많은 촬영물 가운데 유효한 에피소드, 이미지, 인터뷰를 선별하고

거기에 추가로 과거의 자료화면, 재연, 자막,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부가장치가 사용될 수 있다.

 

3.  이 재료들을 각각의 시퀀스로 구조화 한다.

각 시퀀스는 의미 단락의 가장 큰 단위이며 이야기 전개의 중요한 변곡점을 제공한다.

쉽게 말해 "의미-관계-(변곡점)의미"로 "시퀀스-시퀀스"가 구성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전체 이야기 방향을 그려낸다.

 

4.  각 시퀀스들을 효과적으로 연결하여 기억해야 할 순서에 따른 경로에 배치한다.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힘은 시퀀스 자체가 아닌 시퀀스와 시퀀스 사이에서 발생한다.

연결논리 즉, 인과 관계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이야기의 흐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연결논리에는 대략 3가지가 있다. '그리고', '그러나', '그런데'

'그리고' : 동질적인 연속성을 가지는 연결 (점진적인 이야기 심화 -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임)

'그러나' : 앞 시퀀스를 바탕으로 하되, 전혀 상반된 내용으로 이어짐 (이야기의 새로운 국면을 부름 - 긴장감)

'그런데' : 앞 시퀀스와는 상관없이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가져옴 (이야기의 새로운 국면을 부름 - 긴장감)

 

연결논리에 따라 단단히 구조화된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방향으로 목표를 향해 관객을 이끈다.

 

목표를 향한 '기억의 순서'대로 배열하려면 그 기준을 어떻게 삼아야 할까?

 

다큐멘터리의 목표는 소재와 깊은 연관이 있는데, 이야기의 근본적인 진행방식은 그 목표에 종속된다.

앞서 정리한 내용 대로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이야기를 구성한다고 생각해본다.

그런데 촬영물 및 부가 장치도 다양하고 연결논리도 여러가지이다.

이를 무작정 배열할 수는 없다. 

영상으로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내가 발화하고자 하는 것을 설득적으로 구조화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배열'할 것인지 그 '기준'을 정해야 주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발단' - 문제의 제기

'전개' - 문제를 인식해가는 발전과정 (정점은 발화자가 전하고자하는 메세지가 완결됐다고 생각되는 지점)

'대단원' - 지금까지의 논의를 되새기고 정리하는 부분으로 치환

이러한 3막 구조는 어떤 다큐에서도 포괄적인 적용이 가능하다. (<다큐의 기술> 그대로 인용)

 

보통 상영 시간 120분 영화를 기준으로 했을 때 30분까지가 시작 부분인 1막인 것이 일반적이며,

그다음 60분 가량이 중간 단계인 2막, 사건이 갈등을 겪고 해결로 나아가는 마지막 30분이 3막이다.

(<시나리오란 무엇인가?>, 2001)

 

'전개' 단계의 과정은 다큐 작가가 스스로 문제의 내용을 이해해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관객이 문제의 내용을 인식해갈 수 있도록, 관객의 이해도가 발전해갈 수 있도록 포석해가는 과정이다.

 

문제의 흐름이 이야기로서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이야기 구성의 기본은 플롯 구축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토리'와 '플롯'을 엄격히 구분한다.

스토리는 말 그대로 이야기이다. 작가적 관점에서 그냥 '소재'이다.

플롯은 이 스토리를 구성하고 있는 에피소드를 분절하여 재구조화한 것이다.

(*사전적 '플롯'의 의미 : 한 스토리 안에서 서로 인과적 관계를 갖고 있는 사건들의 구조)

 

ex) 나는 공연을 했다. 이후에 고기를 잔뜩 먹었다. --> 이야기

     나는 공연을 했다. 홀가분하고 기쁜 마음에 고기를 잔뜩 먹었다. --> 플롯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중요한 것은 플롯을 구성할 때 단순 인과관계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사건을 어떤 인과관계로 인식시키느냐에 따라 이야기를 재구조화 하는 것이다.

 

<다큐의 기술>에서는 예시를 들어서 같은 이야기를 다양한 플롯 변주로 설명하는데,

그와 비슷하게 적용하여 나의 예시를 재구조화해보고자 한다.

 

나는 고기를 잔뜩 먹었다. 긴장이 풀려 홀가분하고 기쁜 상태이기 때문이다. 나는 방금 공연을 마쳤다.

 

나는 매우 기쁜 상태이다. 발걸음이 가볍다. 무대에서 내려온 친구들과 포옹을 한다. 나는 한 달 내내 연습실에서 살 정도로 열심히 춤을 췄다. 그리고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 공연진들과 함께 뒤풀이장소로 가서 고기를 잔뜩 먹었다.

 

이야기의 목표를 '열심히 공연을 준비한 후의 뿌듯함'으로 삼고 싶다면 다르게 구조화 할 수 있다.

 

나는 연습실에서 춤을 추고 있다. 단체 연습을 한다. 그 뒤에 남아서도 개인 연습을 한다. 연습을 마치고 새벽에 가는 길에 콜라를 사먹는다. 아주 상쾌한 기분이 든다. 매일을 연습 시간으로 채운다.

지하철을 타다가 졸아서 못내린다. 또 연습실에 가서 춤을 춘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연습한다.

공연 당일날 잔뜩 긴장한다. 무대에 올라 무사히 공연을 한다. 무대에서 내려와 기쁜 마음으로 친구들과 포옹한다.

뒤풀이 장소로 함께 이동한다. 맛있는 고기를 먹으며 공연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써보니까 이야기가 어떻게 확장되고 재구조화되는 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다큐의 기술>에 써있었던 것만큼 적절한 예시였는 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떤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줘 강화할 지, 어떻게 이야기를 배치하여 적절한 플롯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지 알 것 같다.

 

이 글은 이렇게 방법론적으로 예시를 들어 설명하고 있으면서도 창작자의 '자유'에 대해 강조한다.

기존의 방법론적 분류항에 자신의 이야기 방향을 구속시키는 것은 좋은 방향이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 구조화 방식을 이해하되

나의 목표를 수행할 적절한 방법을 스스로 탐구해야한다.

<다큐의 기술>에서 필자가 언급한 것처럼 '왜 그러면 안되는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현재의 진행자가 과거의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게"도 하고, "스튜디오를 미니멀한 장치의 연극무대로 바꾸"고,

"주인공이 좋아하던 노래를 편곡하여 다큐 전편의 맥락으로 삼는" 등의 도전적인 시퀀스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인과관계에 입각한 기본틀에 따라 다큐멘터리를 이끌어가면서도

그 안의 플롯 구성은 보다 새로운 방식을 도전해가며 이야기를 구축하는 것이다.